무어의 법칙은 끝났는가? 포스트 실리콘 시대의 생존 전략
1965년, 인텔의 공동 창업자 고든 무어(Gordon Moore)는 "반도체 집적회로의 성능은 24개월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경험칙을 제시했다. 이른바 '무어의 법칙(Moore's Law)'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이 법칙은 IT 산업을 지탱하는 절대적인 진리이자, 엔지니어들이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마일스톤(Milestone)이었다.
하지만 현재, 반도체 산업은 물리적 한계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 서 있다. 회로 선폭이 나노미터(nm) 단위를 넘어 원자 단위인 옹스트롬(Å) 시대로 진입하면서, 기존의 스케일링(Scaling)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비관론이 대두되고 있다.
본 리포트에서는 무어의 법칙이 직면한 공학적 난제와 이를 극복하기 위해 태동하고 있는 '포스트 실리콘(Post-Silicon)' 시대의 핵심 기술 전략을 심층 분석한다.
1. 미세 공정의 물리적 한계와 경제적 딜레마
반도체 미세화가 한계에 봉착한 근본적인 원인은 '양자 터널링 효과(Quantum Tunneling Effect)'와 '발열 제어의 불가능성'에 있다.
회로의 선폭이 3nm 이하로 좁아지면, 전자가 게이트(Gate)의 통제를 벗어나 제멋대로 이동하는 누설 전류(Leakage Current) 현상이 발생한다. 이는 칩의 전력 효율을 급격히 떨어뜨리고 발열을 심화시킨다. 과거에는 공정을 미세화할수록 성능은 오르고 전력 소모는 줄어드는 '데나드 스케일링(Dennard Scaling)'이 적용되었으나, 이제 그 공식은 깨진 지 오래다.
더 큰 문제는 경제성이다. 2nm 공정을 구현하기 위한 EUV(극자외선) 노광 장비와 팹(Fab) 건설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치솟고 있다. 칩을 작게 만드는 비용이 칩의 성능 향상으로 얻는 이익을 초과하는 순간, 무어의 법칙은 경제적으로 사망 선고를 받게 된다.
2. 구조의 혁신: FinFET에서 GAA로의 전환
이러한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반도체 업계는 트랜지스터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혁신을 단행했다. 그 핵심이 바로 GAA(Gate-All-Around) 기술이다.
2-1. 3차원 구조의 진화
기존의 평면(Planar) 구조가 한계에 달했을 때, 물고기 지느러미 모양의 3면을 사용하는 핀펫(FinFET) 기술이 등장했다. 하지만 3nm 이하 공정에서는 핀펫으로도 전류 제어가 불가능해졌다.
GAA는 전류가 흐르는 채널의 4면을 게이트가 둘러싸는 구조다. 수도꼭지를 꽉 잠그듯 전류를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어 전력 효율을 획기적으로 개선한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양산에 성공한 MBCFET(Multi-Bridge Channel FET) 방식은 종이 같은 나노시트(Nano Sheet)를 적층하여 성능과 효율을 동시에 잡은 대표적인 사례다.
3. 패키징의 혁명: 이종 집적(Heterogeneous Integration)
전공정(Fab)에서의 미세화가 한계에 다다르자, 후공정(Packaging) 기술이 새로운 돌파구로 떠올랐다. '무어의 법칙'을 넘어 '모어 댄 무어(More than Moore)'를 실현하는 핵심 기술이다.
3-1. 3D 패키징과 칩렛(Chiplet)
하나의 큰 다이(Die)에 모든 기능을 넣는 기존 방식(Monolithic)은 수율 확보가 어렵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 다른 기능을 하는 작은 칩 조각(Chiplet)들을 따로 제조한 뒤, 레고 블록처럼 하나로 조립하는 기술이 대세가 되었다.
여기에 TSV(실리콘 관통 전극) 기술을 활용하여 칩을 수직으로 쌓아 올리는 3D 패키징은 데이터 전송 속도를 비약적으로 높였다. 엔비디아의 AI 가속기나 AMD의 고성능 CPU가 모두 이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Conclusion: 옹스트롬 시대의 승자
무어의 법칙은 죽지 않았다. 다만 그 정의가 '집적도' 중심에서 '시스템 효율' 중심으로 진화했을 뿐이다.
포스트 실리콘 시대의 승패는 누가 더 미세한 회로를 그리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효율적으로 칩을 연결하고(Advanced Packaging), 새로운 구조(Architecture)를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반도체 산업은 이제 단순 제조업을 넘어, 물리학과 설계 미학이 결합된 종합 예술의 영역으로 진입하고 있다.